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에 대한 글을 쓰려고 자료를 찾다 보니, 일본 국회의원들이 행정부에서 여러 자리를 맡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의원내각제 국가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행정부의 공무원을 겸임할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굉장히 많은 의원이 굉장히 많은 직을 겸한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개략적인 소개만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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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에는 주로 일본의 국무대신(장관)이 언론에 많이 나오지만, 일본 정치인들이 행정부에서 맡고 있는 직은 굉장히 많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개를 맡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2001년에 일본에서 시행된 중앙성청개편(中央省庁再編)을 통해, 기존에 관료가 주도하던 행정을 정치인이 주도하는 행정으로 개편하겠다는 취지에서 정치인이 참여하는 행정 직책을 더 많이 늘렸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국회의원이 행정부에서 맡는 주요 직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무차관은 비교를 위해 적은 것으로, 정무직 공무원은 아닙니다). 오른쪽에는 대응되는 한국의 직급을 적었습니다.
1. 내각총리대신(内閣総理大臣) - 대통령급
2. 내각관방장관(内閣官房長官) - 국무총리급, 관행상 국회의원이 담당
3. 국무대신(国務大臣) - 장관급, 관행상 국회의원이 담당
4. 부대신(副大臣) - 차관급, 기존의 정무차관(政務次官), 관행상 국회의원이 담당
5. 대신정무관(大臣政務官) - 차관급(~차관보급), 관행상 국회의원이 담당
6. 대신보좌관(大臣補佐官) - 차관급(~차관보급), 국회의원이 반 정도
7. 사무차관(事務次官) - 차관급, 직업공무원이 담당
1. 내각총리대신(内閣総理大臣) - 대통령급
내각총리대신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해당하는 직책입니다. 주로 줄여서 총리(総理)라고 부르거나, 수상(首相)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일본의 실질적인 국가 원수로서의 권한과 행정 수반으로서의 권한을 가집니다. 형식적으로는 천황이 국가 원수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과 가장 비교되는 권한으로는 중의원(하원)에 대한 해산권이 있습니다. 법적으로 총리의 임기가 정해진 건 없지만, 각 당의 당헌·당규에 총재의 임기가 정해져 있다면 그게 실질적인 총리의 임기 제한이 됩니다. 현직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소속된 자민당의 총재 임기는 3년이고, 최대 3회까지 가능합니다. 원래는 3년-2회였는데, 2017년 3월에 3년-3회로 늘렸습니다.
2. 내각관방장관(内閣官房長官) - 국무총리급
주로 관방장관(官房長官)으로 줄여 부릅니다. 내각관방장관은 한국에는 없는 직책이기 때문에, 내각관방장관의 직무는 더 자세히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일단 관방(官房, secretariat)이라는 단어 자체는 비서실을 의미합니다. 영어 위키피디아에 한국의 대통령 비서실이 Presidential Secretariat (South Korea)로 올라와 있는 것에서도, 일본 관빙이 한국의 대통령비서실과 유사하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각 부처의 국무대신(장관) 밑에도 대신관방(大臣官房)이라는 기관이 있고, 실제로 하는 일은 한국의 장관 비서실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내각관방장관은 한국의 대통령 비서실장의 역할(대통령의 총괄적인 업무 보조·정보 수집·국회와의 의견 조율(일반적으로는 정무수석이 담당))도 하고, 국무총리 역할(부처 간 업무 조정·의견 조율)도 하고, 정부(특히 내각총리대신)의 대변인 역할도 하는 직책입니다. 이러한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국무대신보다는 높게 보고 있고, 한국으로 치면 국무총리급 또는 그 이상으로 보시면 됩니다.
한국의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의 경우 업무 영역이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부처 간 업무 조정·의견 조율이나 국회와의 의견 조율은 대통령비서실장·국무총리가 둘 다 하는 일인데, 이건 대통령이 비서실장과 국무총리에게 일을 어떻게 맡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역사적으로는 이해찬 전 총리처럼 대통령이 국무총리에게 힘을 실어주어 행정의 중심 역할을 맡기는 경우도 있었고, 박지원 전 비서실장처럼 비서실장이 실세로 불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본의 내각관방장관은 이 모든 것이 섞여 있는 직책이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일을 모두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게다가 일본의 내각관방장관은 6선 이상의 다선 의원이 맡는 경우가 많아서 한국의 국무총리보다는 정치적 힘이 있는 편입니다. 다만 일본도 역시 현직 총리대신이 관방장관에게 일을 어떻게 맡기느냐에 따라 구체적으로 하는 일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총리대신 본인이 언론과의 관계가 좋다면 총리대신이 직접 기자회견을 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고, 상대적으로 관방장관이 언론과의 관계가 좋다면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입니다.
참고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아베 신조(安倍晋三)처럼 관방장관을 거쳐 총리가 된 경우도 여럿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부총리(副総理)라고 부르는 직책도 있는데, 한국과는 달리 법적으로는 있는 직책은 아닙니다. 일본 내각법 제9조에 따라 현직 총리는 총리에게 사고가 일어나는 등의 경우에 직무를 대행할 국무대신을 미리 지정할 수 있는데, 특별히 지정하지 않으면 관방장관이 총리대행을 합니다. 그런데 관방장관 이외에 다른 국무대신을 대행 1순위자로 지정하면, 그 사람을 특별히 '부총리'라고 부릅니다. 이 글이 작성된 2018년 1월 2일 기준으로는 아소 다로(麻生太郎) 전 총리가 현직 재무대신으로서 총리대행을 맡을 1순위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아소 재무대신을 부총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일본인들도 모두가 정치와 법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라서, 내각관방장관을 부총리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3. 국무대신(国務大臣) - 장관급
일본 내 언론에서 표현할 때에는 대신(大臣)으로 줄여 부릅니다. 한국 언론에서 표현할 땐 장관으로 부르거나, 조직 이름을 붙여 (외무,총부,법무)상(相)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국무대신은 한국의 장관에 해당하는 직책입니다. 일본 헌법 제75조에는 "국무대신은 그 재임중에 내각총리대신의 동의가 없으면 소추되지 않는다."고 하여 일종의 불소추 특권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에 나온 직책 소개에서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거의 중의원(衆議院, 하원) 소속 의원(議員)인데, 국무대신 중에는 참의원(参議院, 상원) 소속 의원(議員)도 종종 있습니다.
4. 부대신(副大臣) - 차관급
부대신은 대신의 정무를 보조하기 위한 직책입니다. 부대신과 대신정무관은 기존의 정무차관을 없애면서 만든 직책입니다. 정무차관이 있었을 당시에는 정무적인 일은 정무차관이, 사무는 사무차관이 하는 것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권한이 워낙 없어서 당시에는 1~3선의 젊은 국회의원들이 정책 입안과 행정을 공부하는 자리에 불과했습니다(현재의 대신정무관이 이와 비슷해 보입니다). 그래서 2001년 중앙성청개편 때 대신을 대리해서 성령(省令)을 제정하는 권한이나, 대신을 대리해서 허가·인가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추가한 부대신을 만듭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보면, 현재의 부대신은 차관급중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로 보입니다. 물론 지금도 권한은 별로 없지만, 2~5선의 의원들이 맡는 것을 보면 이전의 정무차관보다는 격이 높은 직책입니다.
5. 대신정무관(大臣政務官) - 차관급(~차관보급)
정무관(政務官)으로 줄여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정무관도 대신의 정무를 보조하기 위한 직책입니다. 같은 국회의원 출신이지만, 1~3선의 의원들이 맡습니다. 그야말로 행정에 대해 공부하기 위한 위치로 보입니다. 정무관의 격에 대해서는 차관급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차관보급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무관 자리는 거의 국회의원들만 한다는 점과(참고로 국회의원은 차관급), 급여 수준이 부대신과 큰 차이는 안 난다는 점을 보면 낮은 차관이지 차관보급은 아닌 것 같습니다.
6. 대신보좌관(大臣補佐官) - 차관급(~차관보급)
보좌관은 여기저기에 워낙 많이 있어서, 줄여서 부르기보다는 정식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보좌관도 역시 대신을 보조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일단 규정상으로는 ①정치인이 맡는다면 대신정무관급 대우, ②비정치인(일본에서는 '민간인'이라고 부름)이 맡는다면 사무차관급 대우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4~6선 의원 같이 선수가 높은 의원도 종종 맡는다는 점, ⓑ사무차관 출신이 맡는 경우도 있다는 점, ⓒ상근의 경우 급여도 사무차관급으로 받는 점, ⓓ포괄적인 업무가 아니라 특별히 지정한 분야의 업무를 맡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특무차관으로 보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7. 사무차관(事務次官) - 차관급
사무차관도 대신을 보조하기 위한 자리지만, 직업공무원 출신이 임명되며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실무를 맡는다는 점에서 위와 직책들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무차관은 일단은 위에 나온 모든 직책보다 낮은 대우를 받습니다. 의전서열과 급여가 위의 직책보다 낮습니다. 하지만 행정 실무의 중심이라는 점에서는 대한민국의 차관과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업무 처리를 위해 차관급 회의가 열리면 한국의 차관과 일본의 사무차관이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