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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판례 소개] 나가누마 나이키 사건 (평화적 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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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헌법 전문(前文)에 대해 다루다가 평화적 생존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그 사례로 많이 언급되는 것이 나가누마 나이키 미사일 기지 소송입니다. 1심에서는 평화적 생존권이 인정되었지만, 2심과 3심에서는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문서를 읽던 중, 번역 연습도 할 겸 블로그에 번역문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이 글의 본문 부분은 일본어 위키백과의 長沼ナイキ事件 문서 2017.10.7.판을 번역한 문서입니다. 원본 위키피디아 문서CC BY-SA 3.0 라이센스(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Unported) 하에서 사용이 가능하며, 이에 따라 이 문서도 같은 라이선스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참고로 고유명사의 표기에 관해서는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을 따랐습니다.

 

 

읽기 전에

각하와 기각

아시다시피 각하는 소 제기 요건(이 글에서는 특히 원고적격과 협의의 소익)을 갖추지 못하여 본안 판단 없이 소를 끝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각은 소 제기 요건은 모두 갖추었으나, 본안 판단에서 원고 주장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글을 보면, 각하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도 기각이 들어가 있습니다.

 

최고재판소 판결문을 읽어 보면, 일부 원고는 원고 적격이 없고, 일부 원고는 (원고 적격이 있다 하더라도) 협의의 소익이 없으므로 각하한다는 취지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별개 의견에서도 "본건 소송을 각하해야 함(本件訴えを却下すべき)"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주문(主文)에서는 "본건 상고를 기각한다(本件上告を棄却する)"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판결문에서도 각하와 기각을 엄밀히 구분해서 사용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 글을 읽으시면서도 각하와 기각 표현이 어느 정도 혼용되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원고적격과 협의의 소익

한국 행정소송법 제12조는 "취소소송은 처분등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가 제기할 수 있다. 처분 등의 효과가 기간의 경과, 처분등의 집행 그 밖의 사유로 인하여 소멸된 뒤에도 그 처분등의 취소로 인하여 회복되는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의 경우에는 또한 같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일반적으로 1문은 원고적격·2문은 협의의 소익에 관한 문구라고 해석합니다.

 

일본의 행정사건소송법(行政事件訴訟法) 제9조에도 이와 마찬가지의 규정이 있습니다. 동법 제9조에서는 "처분의 취소소송 또는 재결의 취소소송(이하 '취소소송'이라 부른다)은, 당해 처분 또는 재결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의 이익을 가진 자(처분 또는 재결의 효과가 기간의 경과 그 밖의 이유로 없어진 후에도 또한 처분 또는 재결의 취소로 인하여 회복할 법률상의 이익을 가진 자도 포함한다.)"에 한하여 제기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표현이 길기는 하지만 한국 행정소송법 제12조와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행정소송법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쉽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나가누마 나이키 사건

나가누가 나이키 사건(長沼ナイキ事件)이란, 자위대의 합헌성이 문제된 사건이다. 나가누마 소송·나가누마 사건·나가누마 나이키 기지 소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래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unported Lincense 하에 사용 가능)

 

개요

항공자위대 나가누마 기지 나이키J 1987 촬영

 

홋카이도(北海道) 유바리군(夕張郡) 나가누마초(長沼町)에 항공자위대의 '나이키 지대공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농림대신이 1969년 삼림법을 근거로 국유보안림 지정을 해제하였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주민은, '기지 건설에 공익성이 없으며, 자위대는 위헌, 보안림 해제는 위법'임을 주장하여,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1심 삿포로 지방재판소(札幌地方裁判所)는 '평화적 생존권'을 인정하여, 첫 위헌판결로 처분을 취소하였다. 이에 대해 국가가 항소하여 2심 삿포로 고등재판소(札幌高等裁判所)는 '방위시설청의 대체 시설(댐) 완성으로 원고의 소익이 보전된다'고 하여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자위대의 위헌성에 대해서는 '통치행위론(統治行為論)'을 들어 (법원의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원고인 주민은 이에 상고하였으나, 최고재판소(最高裁判所)는 헌법에 대한 판단 없이 원고적격이 없음을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였다.

 

일부 정재계에서 청년법률가협회에 압력을 가하기도 하고, 삿포로 지방재판소장이 재판장에게 원고의 신청를 기각하도록 지시하기도 하였으며, 70년대 당시 안보투쟁 분위기에 전국에서 재판장에 대한 지지 집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재판의 흐름

 

발단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중 일미 안보문제가 주목을 받던 1969년, 홋카이도 유바리군 나가누마초 마오이산(馬追山)에 항공자위대의 나이키J 지대공 미사일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농림대신 하세가와 시로(長谷川四郎)는 삼림법 제26조 제2항에 근거해 국유보안림 지정을 해제하였다. 일부 지역 주민이, 자위대의 위헌성과 홍수의 위험성을 이유로 '기지 건설에 공익성은 없다'고 하여 보안림 해제는 위법하다고 주장하면서, 행정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삿포로 지방재판소에 제기하였다. 삿포로 지방재판소의 1심 재판에서는, 1969년 9월 14일 당시 삿포로 지방재판소장이던 히라가 겐타(平賀健太)가 재판장 후쿠시마 시게오(福島重雄)에게 소송판단의 문제점에 대해 원고의 신청을 각하하도록 부추기는 "한 선배의 조언"이라고 제목이 붙은 상세한 메모가 들어간 '히라가 편지 문제'가 발각되어 문제가 되었다. 이는 "재판관의 독립"을 규정한 일본국 헌법 제76조 제3항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은 히라가 소장에게 주의 처분을 하였다. 다만 후쿠시마 재판장의 판결은 후에 삿포로 고등재판소와 최고재판소에 의해 파기되어, 후쿠시마 재판장 자신도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에 의해 다른 현의 가정재판소로 좌천되었다. 한편 가고시마(鹿児島) 지방재판소장 이모리 시게토(飯守重任, 다나카 고타로(田中耕太郎) 전 최고재판소 장관의 친동생)는 히라가 소장을 옹호하였다.

 

재판장 재판관 후쿠시마 시게오가 청년법률가협회의 회원이라는 이유로 '청년법률가협회는 반체제 좌경 단체'라고 주장하는 일부 보수계 언론·정치가로부터 비난을 받았고, 피고 국가(=법무성)는 1970년 4월 18일 후쿠시마 재판장이 청년법률가협회 소속이라는 이유로 기피 신청을 했다. 하지만 삿포로 고등재판소는 같은 해 7월 10일, "청년법률가협회 가입은 재판의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다"고 하여 기피신청을 각하하였다. 한편 1971년 4월 13일 최고재판소는, 청년법률가협회 소속의 재판관 미야모토 야스아키(宮本康昭) 판사보에 대한 재임을 이유 고지 없이 거부하였고, 이것은 청년법률가혐회에 대한 본보기라는 의혹을 받았다 (이른바 미야모토 판사보 재임용 거부 문제). 이로부터 2년 전인 1969년에는 최고재판소 장관 이시다 가즈토(石田 和外)에 의한 블루 퍼지(blue purge, 청년법률가협회계 판사 배제)가 단행되었다.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이 판사 임명에 있어서 청년법률가협회의 법조인을 피하는 행위는 이후에도 행해졌다. (데라니시 가즈시(寺西和史)의 사례 등)

 

 

제1심 판결

삿포로 지방재판소(재판장: 후쿠시마 시게오)는 1973년 9월 7일 "자위대는 헌법 제9조에서 금지하는 육해공군에 해당하여 위헌이다"라고 하여 "세계 각국이 모두 자국의 방위를 위해 군비를 보유하고 있다거나, 단지 자국의 방위를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는, 그것이 군대 내지는 전력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는 첫 위헌 판결로 원고 주민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제1심 판결은) "보안림 해제의 목적이 헌법에 위반되는 경우, 삼림법 제26조에서 말하는 '공익상 이유'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보안림 해제 처분은 취소를 면할 수 없다"라는 이유를 들어, 주문에서 국유보안림의 해제를 취소한다고 판시하였다. 보안림 지정 해제 처분과 나이키J 발사기지의 설치에 의해, 유사시에는 상대국의 공격 제1목표가 되므로 헌법 전문에서 말하는 "평화롭게 생존할 권리"(평화적 생존권)을 침해당할 위험이 있다고 보아, 원고의 소익을 인정하였다. 평화적생존권에 관해서는 "국민 한 명 한 명이 평화롭게 생존하며, 또한 그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명확하게 판시하였다. (札幌地判昭48・9・7、判時712・249)

 

 

제2심 판결

삿포로 고등재판소(재판장: 오고 야소지)는 1976년 8월 5일, "주민측의 소익(홍수의 위험)은 방위시설청의 대체시설(댐) 건설에 의해 보전된다"고 하여,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또한 자위대의 위헌성에 대해, 판결은 스나가와 사건(砂川事件)과 마찬가지로 "본래는 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고도의 정치성이 있는 국가행위는 극히 명확하게 위헌무효라고 인정되지 아니하는 한 사법심사의 범위 밖에 있다"고 하는 통치행위론을 병기하였다. (札幌高判昭51・8・5、行裁例集27・8・1175)

 

 

최고재판소 판결

최고재판소(제1소법정, 재판장 판사: 단도 시게미츠(団藤重光))는 1982년 9월 9일, 행정처분에 관해 원고적격의 관점에서 원고 주민의 소익이 없다고 하여 주민측의 상고를 기각하였으나, 2심에서 언급한 자위대의 위헌심사는 하지 않았다. (最一小判昭57・9・9、民集36・9・1679)

 

 

최고재판소 판결 요지

1. 보안림의 지정에 있어 삼림법 제27조 제1항에서 말하는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자"는, 위 지정해제처분 취소소송의 원고적격을 가진다.

2. 농업용수의 확보를 목적으로 하고, 홍수 예방·마실 물의 확보 효과 효과도 배려하여 지정된 보안림의 지정 해제에 의해 홍수 완화·갈수 예방상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일정 범위의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은, 삼림법 제27조 제1항에서 말하는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자"로서, 위 해제 처분 취소소송의 원고 적격을 가진다.

3. 이른바 대체시설의 설치에 의해 홍수·갈수의 위험이 해소되어, 그 방지상의 (목적으로는) 보안림의 존재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인정되기에 이른 때에는, 위 방지상의 이익 침해를 기초로 하여 보안림 지정해제처분 취소소송의 원고적격을 인정받은 자의 소익은 사라진다.

4. 보안림 지정해제처분 이후 해당 토지의 입목 대나무를 벌채하는데, 벌채를 끝낸 후의 토지를 이용함으로써 생길 이익이 침해 받을 위험은, 위 해제처분 취소소송 원고적격의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연표

1969년 07월 07일 - 농림대신, 보안림 지정 해제를 고시

 09월 20일 - 삿포로 고등재판소, 히라가 편지 문제로 이례적 엄중주의 처분

 12월 02일 - 중의원 해산 (오키나와 해산(沖縄解散))

1970년 01월 14일 - 제3차 사토 내각(佐藤内閣) 성립

 04월 08일 - 최고재판소, 청년법률가협회 문제로 재판관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 공식 견해를 공표

 04월 18일 - 피고 법무성, 재판장 후쿠시마 시게오에 대한 기피 신청

 06월 23일 - 일미 안보조약, 자동 연장

 07월 10일 - 삿포로 고등재판소, 기피 신청을 각하

 10월 20일 - 첫 방위백서 출간

 12월 19일 - 일본변호사연합회(日本弁護士連合会) 임시 총회, 히라가·후쿠시마 재판관에 대한 소추위원회 결정에 관한 의결

1971년 04월 13일 - 최고재판소, 재판관 미야모토 야스아키의 재임을 거부

 06월17일 - 오키나와 반환협정 조인

1972년 05월 15일 - 오키나와 반환

 10월 09일 - 제4차 방위력 정비계획 (총액 4조 6300억 엔)

1973년 09월 09일 - 1심 삿포로 지방재판소, 자위대 위헌 판결

1976년 08월 08일 - 2심 삿포로 고등대판소, 역전 판결(전심과 다르게 판결)

 10월 29일 - 1977년 이후의 "방위계획의 대강"(번역하자면 방위계획지침)을 각의 결정

1977년 02월 18일 - 요미우리 신문(読売新聞) 사설, 1심의 위헌입법심사권의 존재 의의를 평가

 11월 30일 - 미군 다치카와(立川) 기지 (다치카와 비행장) 전면 반환

1981년 07월 08일 - 요리우리 신문 사설, 2심의 통치행위론을 지지

1982년 09월 09일 - 3심 최고재판소 제1소법정, 상고기각 판결

1994년 - 나이키 미사일 운용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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