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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위키백과 번역] 백인일수(百人一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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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알아 볼 대상은 백인일수(百人一首, ひゃくにんいっしゅ; 햐쿠닌잇슈)입니다. 일본 문학 작품에서 종종 만엽집(万葉集, まんようしゅう; 만요슈) 또는 백인일수가 인용되는 걸 많이 봤기 때문에, 일본의 고전 시가에 대해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백인일수에 관한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관련 글

[일본어 공부 책 리뷰] 에피소드로 배우는 백인일수 익힘책

→ 제가 읽었던 책입니다.

'백인일수' 글 모아 보기

→ 이후 백인일수 공부를 추가로 하여, 제 나름대로 백인일수를 해설하고 번역해 보았습니다.


책을 읽고 리뷰도 간단히 하였으니 블로그에도 백인일수에 관한 정보를 쓰려고 합니다. 전문서적의 내용을 적어드리면 좋겠지만, 저작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조건부로 활용 가능한 위키피디아의 글을 해석·번역하여 소개해드립니다.


이 글의 본문은 일본어 위키피디아 百人一首 항목 2017년 12월 29일 07:48 버전을 일부 번역한 것입니다. 해당 위키피디아 문서는 그 문서의 하단에 기록된 것처럼 CC BY-SA 3.0 라이센스(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Unported) 하에서 사용이 가능하며, 이에 따라 이 문서도 같은 라이선스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백인일수

백인일수(百人一首; 햐쿠닌잇슈)란, 100명의 시인(歌人)이 지은 와카(和歌)를 1명당 한 수씩 골라 만든 시 모음집(秀歌撰)이다. 그 중에서도 후지와라노 사다이에(藤原定家)가 교토(京都) 오구라산의 산장에서 골랐다고 하는 '오구라 백인일수(小倉百人一首; 오구라 햐쿠닌잇슈)'는 시 카루타(가루타)(歌がるた)에서 널리 사용되며, 일반적으로 백인일수라고 하면 오구라 백인일수를 말하기에 이르렀다. 이 글에서는 바로 이 오구라 백인일수에 대해 해설한다.


1. 개요

오구라 백인일수는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1185~1333) 초기에 걸쳐 활동한 귀족(公家) 후지와라노 사다이에가 편찬한 시 모음집이다. 그 원형은 가마쿠라 막부의 가신이며 시인이었던 우쓰노미야 렌쇼(宇都宮蓮生; 우츠노미야 렌쇼), 즉 우쓰노미야 요리쓰나(宇都宮頼綱; 우츠노미야 요리츠나)의 요청에 의해 후지와라노 사다이에가 작성한 시키시(色紙, 서화용의 두꺼운 종이; 색지)이다. 우쓰노미야 렌쇼는 교토의 사가노(嵯峨野, 현 교토부 교토시 우쿄구 사가)에 건축한 별장, 오구라 별장의 후스마(襖, 전통 일본식 가옥의 칸막이)를 장식하기 위해, 후지와라노 사다이에에게 시키시의 작성을 의뢰하였다. 후지와라노 사다이에는 아스카 시대(飛鳥時代, 592~910)의 덴지 천황(天智天皇)부터 가마쿠라 시대의 준토쿠 천황(順徳天皇)까지 100명의 시인들이 쓴 작품 중 뛰어난 와카를 한 수씩 선별하여, 시대순으로 시키시에 적었다. 오구라 백인일수가 만들어진 연대는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13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만들어진 당시에는 이 백인일수에 특정 이름은 없었고 '오구라 산소 시키시 와카(小倉山荘色紙和歌; 오구라산장색지화가)', '사가 산소 시키시 와카(嵯峨山荘色紙和歌; 사가산장색지화가)', '오구라 시키시(小倉色紙)' 등으로 불렸다. 뒤에 후지와라노 사다이에가 오구라산에서 편집했다는 유래로부터 '오구라 백인일수'라는 약칭이 정착되었다.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36~1573) 후기에 렌가(連歌) 작가 소기(宗祇)가 쓴 '백인일수 초(百人一首抄, 백인일수 주석서)'에서 연구·소개되어 오구라 백인일수는 시 공부의 입문서로서 일반인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1868)에 들어서 목판화 기술이 보급되면서, 백인일수는 그림이 들어간 시 카루타의 형태로 서민에게도 널리 퍼져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거리로 보급되었다.


오구라 백인일수와 관련된 책으로는, 마찬가지로 후지와라노 사다이에가 편찬한 '백인수가(百人秀歌)'가 있다. 백인수가도 백인일수처럼 100명의 시인이 쓴 시를 한 수씩 100수를 모아 편찬한 시 모음집이다. 백인수가가 백인일수와 다른 점으로는 ①고토바 천황(後鳥羽天皇)과 준토쿠 천황의 시가 없고, 대신 후지와라노 사다코(藤原定子)·미나모토노 구니자네(源国信)·후지와라노 나가카타(藤原長方)의 시가 들어있다는 점, ②미나모토노 도리요시(源俊頼)의 시 중에서 '우카리케루(うかりける)'가 아니라 '야마자쿠라(やまざくら)'를 넣은 점이 있다. 이 '백인수가'는 '백인일수'의 원형인 것으로 추정된다.


후지와라노 사다이에가 우쓰노미야 렌쇼에게 보낸 시키시, 이른바 오구라 시키시는 우쓰노미야 렌쇼의 자손에게도 일부가 전해 내려왔다. 무로마치 시대에 다도(茶道)가 널리 퍼지자 오구라 시키시를 다실(茶室, 차를 손님에게 대접하는 방)의 장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유행하여 오구라 시키시는 귀하게 취급을 받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부하 구로다 나가마사(黒田長政)를 시켜 전국시대(戦国時代, 1467~1590)의 무장 기이 시게후사(城井鎮房)를 암살하면서 그 일족도 멸한 것은, 기이(城井) 집안에 내려오는 오구라 시키시를 내놓으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요구를 기이 시게후사가 거절한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언급된다. 오구라 시키시는 매우 귀하게 다루어져 가격도 비쌌기 때문에, 위작도 많이 생겨났다.


2.백인일수의 시와 시인

백인일수에 채록된 시 100수에는, 1번 덴지 천황의 시부터 100번 준토쿠 천황의 시까지 각 시에 번호(와카 번호)가 붙어 있다. 이 번호는 대체로 옛날의 시인부터 최근의 시인 순서로 되어 있다.


백인일수 원문과 번역문은 그 자체로도 양이 상당히 많아서, 천천히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쓴 백인일수 해설과 번역은 다음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백인일수' 글 모아 보기]


일단 백인일수 원문과 번역문이 정리되어 있는 다른 사이트의 글을 링크해 둡니다. [링크=나무위키 백인일수 항목]


3.용도

'백인일수'는 단지 시집으로서 감상하는 것 외의 용도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교육 소재

예를 들면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고전의 입문으로서 학생에게 '백인일수'를 소개하며, 이를 암기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백인일수 각각이 와카(5·7·5·7·7 구조의 31문자)이므로 암송하기 쉽고, 후술하듯이 정월의 놀이로서 다루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학생에게 친숙하기 때문이다. 또한 짧은 와카 안에 거는 말(掛詞) 등 여러 수사기교가 사용되고, 부사의 호응 등 문법 예시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고전 입문으로서 적당한 교육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카루타(가루타)

'백인일수'는 현재는 시집으로서보다는 카루타로서 지명도가 높고, 특히 정월의 풍물시로서 매우 친숙하다. '백인일수' 카루타는 시 카루타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현재는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은 형태를 갖는다.


백인일수 카루타는 100장의 읽기용 패(読み札)와, 100장의 집기용 패(取り札)를 합쳐 총 200장으로 구성된다. 읽기용 패와 집기용 패는 화투패처럼 종이를 포개어 만들며, 크기는 74x53mm 정도인 것이 일반적이다. 패의 구조·재질·뒷면 등은 읽는 패와 집는 패가 다르지 않다. 읽는 패의 앞에는 야마토 그림풍의 시인 초상(歌仙絵巻 등의 디자인에 의한 것)과 작자의 이름·와카가 적혀 있으며, 집는 패에는 전부 가나로 적힌 하구(下の句, 5·7·5·7·7 중 뒤의 7·7 구문)만 적혀 있다. 읽는 패에는 채색이 되어 있지만, 집는 패에는 활자만 인쇄되어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카루타 제조사로 유명한 곳으로는 도쿄의 기업인 닌텐도(任天堂, 그 유명한 게임회사)·오이시 덴구도(大石天狗堂)·다무라 쇼군도(田村将軍堂)가 있고, 현재는 세 회사가 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


에도시대까지의 백인일수는, 읽는 패에 작자의 이름과 상구(上の句, 5·7·5·7·7 중 앞의 5·7·5 구문)만 적혀 있고 집는 패에는 하구만 흘려 쓴 글자로 적혀 있었고, 현재처럼 읽는 패에 시 전체가 적혀 있지는 않았다. 이는 원래 시 카루타의 목적이 백인일수를 기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며, 에도시대 중기까지는 시인의 그림이 없는 읽는 패도 종종 보인다. 또한, 현재도 홋카이도에는 '하구 카루타'라는 약간 특수한 백인일수가 있다. 이 '하구 카루타'에서 사용되는 카루타에서는 상구는 읽지 않고 하구만 읽으며, 집는 패는 약간 두꺼운 나무로 되어 있고, 앞에는 옛날 풍의 흘린 글씨로 하구가 적혀 있다. 에도시대의 행태가 남은 가루타라고 할 수 있다.


시 카루타가 정월의 풍속이 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원래 다양한 때에 어린이나 청년들이 모여 노는 축제에 백인일수가 사용되던 것이 이어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정월에는 어린이가 늦은 시간까지 노는 것을 허락받거나, 백인일수를 위한 모임을 갖던 것이 에도시대 후기 이후 종종 보이기도 한다. 현재는 이것이 정월 풍속으로 정착된 것이다.


백인일수를 사용한 주요 놀이로는 이하와 같은 것들이 있다.



흩어놓고 집기(散らし取り; 지라시토리)

많은 사람들이 옛날부터 하던 놀이법 중 하나로, 이하와 같은 규칙에 따른다.

- 읽는 사람(読み手, 일종의 진행자)을 선택한다 (보통은 1명).

- 읽는 패를 모두 읽는 사람에게 주고, 집는 패는 모두 다다미 위 등에 흩어 둔다.

- 집는 사람(取り手, 일종의 선수)은 몇 명이라도 좋다. 집는 사람이 모두 집는 패 주위를 둘러싼다. 이때 공평을 기하기 위해 집는 패의 머리는 제각각 다른 방향을 향하도록 놓아야 한다.

- 읽는 사람이 읽는 패를 적당히 섞고 나서, 패의 순서대로 시를 읽는다.

- 읽는 사람이 시를 읽기 시작하면, 집는 사람은 집는 패를 찾아 집어갈 수 있다.

- 동시에 여러 명이 같은 패를 만진 때에는, 손이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그 패를 집어갈 권리가 있다.

- 잘못된 패를 집어간 때(お手付き)에는 무언가 벌칙을 수행한다. 명확히 정해진 것은 없다.

- 백 장째를 집어가면 종료한다. 가장 많은 패를 집어간 사람이 승리한다.

- 본래 읽는 패에는 상구만 적혀 있었기 때문에, 이 놀이법은 백인일수를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서도, 패를 집어가는 경쟁으로서도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읽는 패에 일수 전체가 적혀 있기 때문에,백인일수를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서의 의미는 퇴색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함게 놀기 위해서는 적당한 놀이법이므로, 카루타 모임 등에서는 대체로 이러한 방법으로 놀이를 하게 되었다.

- 흩어놓고 집기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에서도, 에도시대까지는 읽는 사람이 작자의 이름부터 읽기 시작해서 상구가 끝날 때까지만 읽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작자의 이름은 생략하고, 일수의 상구뿐만 아니라 마지막까지 읽는다. 집는 사람이 집는 패를 잘 찾지 못하면 하구를 반복한다. 읽는 방법에 관해서 상구와 하구 사이에 지나친 공백을 두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본래의 놀이법을 생각하면 공백을 두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다.



역 카루타 (逆さまかるた; 사카사마 카루타)

본래의 백인일수는 위에 적은 '흩어놓고 집기'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역 카루타는 읽는 패(그림과 시 전체가 있는 패)가 집는 패가 되고, 집는 패(하구가 적혀 있는 패)가 읽는 패가 된다. 이 게임은 '하구를 듣고 상구를 아는 것'을 위한 훈련 게임이기도 하다. 이 형식 역시 많은 패를 집어간 사람이 승리한다. 하지만 집는 패가 되는 패(그림과 시 전체가 적혀 있는 패)에는 한자가 섞여 있기 때문에, 생각지 못한 착오 등으로 잘못된 패를 집어가는 실수(お手付き)를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이 이 게임의 특징이다.



겐페이 전투 또는 겐페이 놀이(源平合戦; 겐페이 갓센)

겐페이(源平)란 본래 겐지(源氏, 미나모토 일족)과 헤이시(平氏, 타이라 일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1180년부터 1185년까지 헤이안 시대 말기에 있던 내전에서 두 일족이 싸웠던 것으로부터, 겐페이라고 하면 '홍백'과 같이 싸움의 양팀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이 놀이법은 모인 사람들이 두 팀으로 나누어 단체전을 벌이는 것이다.

1. 흩어놓고 집기와 마찬가지로 읽는 패(그림과 시 전체가 있는 패)와 집는 패(하구가 적힌 패)를 나누고, 읽는 사람을 한 명 정한다.

2. 100장의 집는 패(하구가 적힌 패)를 50장씩 나누어, 각각의 팀에게 준다. 양 팀은 그것을 3단으로 정렬하여 늘어 놓는다.

3. 흩어놓고 집기와 마찬가지로, 읽는 사람이 읽은 시에 해당하는 하구가 적힌 패를 집어 간다. 이때 상대 팀의 패를 집었다면, 자신의 팀이 가지고 있는 패를 한 장 상대에게 준다. 이를 보내는 패(送り札)라고 한다.

4. 자신이 가진 패를 먼저 모두 없앤 팀이 승리한다.


홋카이도 지방에서 열리는 하구 카루타 대회는 대개 이 규칙으로 열리며, 민간에서도 일반적으로 이 규칙으로 게임을 한다.



릴레이 카루타(リレーかるた)

겐페이 놀이와 같은 규칙이지만, 집는 사람이 순차적으로 교대한다는 점이 다르다. 교대 타이밍은 ①자신의 팀이 가진 패를 상대가 집어갔을 경우, ②읽는 사람이 시 10수를 읽었을 때 등으로 한다.



경기 카루타(競技かるた)

사단법인 전일본가루타협회가 정하는 규칙 하에서 열리는 본격적인 경기다. 매년 1월 상순 시가현(滋賀県) 오쓰시(大津市; 오츠시)에 있는 오미 신궁(近江神宮)에서 명인전(名人戦)과 퀸전(クイーン戦)이 개최된다. 명인전은 일본 남성 1위 결정전이고, 퀸전은 일본 여성 1위 결정전이다. NHK BS에서 매년 생중계된다. 또한 7월 하순에는 전국 고등학교 오구라 백인일수 카루타 선수권대회가 열린다. 그 밖에, 전국 각지에서 여러 대회가 개최된다.



승려 뒤집기(坊主めくり)

상기한 놀이법과는 달리, 승려 뒤집기를 할 때에는 시를 읽지 않는다. 하구만 적힌 '읽는 패'만 사용하며, 그림과 시 전체가 있는 '집는 패'는 사용하지 않는다. 100장을 뒤집어 쌓아 놓고(札の山, 이하 패 뭉치), 각 참가자가 그것을 한 장씩 집어 앞면을 보이게 두는 것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많은 지역 룰이 있지만, 많은 곳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 남성이 그려진 패를 뽑은 경우에는 그 패를 자신이 가져간다.

 - 승려(대머리라고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음)이 그려진 패를 뽑은 경우에는, 뽑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패를 모두 패 뭉치(札の山) 옆에 놓는다.

 - 여성이 그려져 있는 패(姫)를 뽑은 경우에는, 뽑은 사람이 패 뭉치 옆에 둔 패를 모두 가져간다.

 - 세미마루(蝉丸)가 그려진 패를 뽑은 경우에는, 뽑은 사람은 1회 쉰다.


패 뭉치가 모두 소진되면 게임이 종료된다. 이때 가장 많은 패를 가지고 있는 참가자가 승리한다. 이외에도 여러 지역 룰이 있으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패 뭉치 옆에 놓은 패가 하나도 없을 때, 여성이 그려진 패를 뽑으면 1장을 더 뽑는 것이 가능하다.

 - 천황패(앉은 자리에 여러 색의 줄무늬(縞模様)가 그려져 있는 패)를 뽑은 경우에는, 여러 장을 뽑을 수 있다.

 - 천황패를 뽑은 경우에는, 패 뭉치와 그 옆에 있는 패를 제외한 모든 패가 그 천황패를 뽑은 사람의 것이 된다.

 - 세미마루를 뽑은 경우, 전원의 패를 패 뭉치 옆에 둔다.


승려 뒤집기는 시를 암기하지 않은 어린이도 참가할 수 있는 놀이로서 고안된 것으로 보이지만, 언제 생겨난 것인지, 누가 만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에도시대의 문헌에는 없는 것으로 보아, 메이지(明治, 1868~1912)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청관(青冠; 아오칸무리) 또는 색관(色冠; 이로칸무리)

승려 뒤집기와 마찬가지로, 시를 읽지 않고 읽는 패(그림과 시 전체가 있는 패)만을 사용하며 집는 패(하구가 적힌 패)를 사용하지 않는다. 4명이 함께 하며, 전원에게 나누어준 패를 나누어 주고 마주 본 두 사람이 협력하여 자신의 패를 없앤다. 100개의 패를 그림 형태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눈다.

 - 덴지 천황(天智天皇, 1번)

 - 지토 천황(持統天皇, 2번)

 - 남성은 머리에 쓴 것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눈다.

 흑관(黒冠)

 청관(青冠) 또는 색관(色冠)

 세로로 된 에보시(縦烏帽子)

 가로로 된 에보시(横烏帽子)

 활을 찬 다섯 남자(矢五郎; 11,17,39,52,75) - 모자에 장식이 있음

 - 여성(女性 또는 姫)

 - 승려(坊主 또는 僧侶)


이 중 덴지 천황(1번)과 지토 천황(2번)은 특별하다. 덴지 천황은 모든 패에 대해 승리하며, 지토 천황은 덴지 천황 이외의 패에 대해 승리한다. 그림을 그린 사람·시기에 따라 100장 중 그림의 구성이 바뀔 수 있는 게임이다. 규칙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읽는 패 100장을 4명에게 모두 나눠준다.

2. 첫 사람을 정해 그 사람이 오른쪽 사람에게 1장의 패를 제시한다.

3. 패를 제시받은 사람은 같은 형태의 그림(위에 적은 분류에 따름)이 그려진 패·덴지 천황·지토 천황 패를 꺼내 응수한다. 덴지 천황은 어떤 패로도 응수할 수 없고, 지토 천황은 덴지 천황으로만 응수할 수 있다.

4. 응수할 수 있었다면, 응수한 사람은 우측 사람에게 패 1장을 제시한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이어 간다.

5. 응수할 수 없었다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측 사람(즉 처음 제시한 사람의 맞은 편 사람)에게 순번이 돌아간다.

이 순서로 진행하여, 처음으로 패를 모두 소모한 팀이 승리한다. 이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승패를 결정한다.


4. 다른 백인일수

오구라 백인일수의 영향을 받아, 후세에 만들어진 백인일수들이다. 대표적인 것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신백인일수(新百人一首; 신 햐쿠닌잇슈)"

아시카가 요시히사(足利義尚) 편찬. 오구라 백인일수에 채택되지 않은 시인의 작품을 선정하였지만, 91번 종2위성충녀(従二位成忠女)는 오구라 백인일수 54번 다카시나노 기시(高階 貴子 또는 儀同三司母)와 동일인물이라는 실수가 있다. 또한 79수째의 시는 사토코 내친왕(恵子内親王)의 시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기시 여왕(徽子女王)의 시다. 그밖에, '백인수가'에서 볼 수 있는 미나모토노 구니자네의 시도 64번에 들어 있다 (다만 백인수가에 있는 시와는 다른 시에 해당한다).


"무가백인일수(武家百人一首; 부케 햐쿠닌잇슈)"

같은 이름의 책이 여럿 있다.

1. 헤이안 시대부터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 무인이 쓴 와카를 수록하였다. 1666년(간분(寛文) 6년) 출간. 사카키바라 다다쓰구(榊原 忠次)가 편찬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책 자체에 그런 취지의 서술이 있는 것이 아니라, 후에 오자키 마사요시(尾崎雅嘉)가 '군서일람(群書一覧)'에서 추정하여 적은 것이다. 또한 1672년(간분 12년)에 히시카와 모로노부(菱川師宣)의 삽화·와카는 도게쓰 난슈(東月南周)의 글로 재출간되었다. 히시카와 모로노부가 서명한 그림책으로는 최초로 보이며, 화가(絵師) 히시카와 기치베(菱川吉兵衛)라고 서명이 되어 있다.

2. 1858년(안세이(安政) 5년) 출간. 쇼게쓰도 슈진(賞月堂主人) 편찬. 1과 비교하면, 23명의 시가 다른 사람의 시로 바뀌어 있다.

3. 1909년(메이지 42년) 출간. 도미타 요시호(富田良穂, とみた よしほ) 편찬. 신대부터 막부 말기까지의 무장·다이묘(大名)·부인 등의 와카를 수록하였다.


"신찬무가백인일수(新撰武家百人一首; 신센 부케 햐쿠닌잇슈)"

18세기 다테 요시무라(伊達吉村) 편찬. 무로마치 시대부터 에도중기에 걸친 무장·다이묘의 와카를 수록하였다.


"후찬 백인일수(後撰百人一首; 고센 햐쿠닌잇슈)"

19세기 초반 출간. 서문에 의하면 니조 요시모토(二条良基)가 편찬하였고 中院関白顕実가 보충하여 작성하였다고 되어 있지만, 中院関白顕実의 존재가 의심스러워 출간 연대는 미상. 칙명으로 만들어진 책(칙찬집, 勅撰集)뿐만 아니라, 쇼쿠시카와카슈(続詞花和歌集) 등 사찬집에서도 채록한 것이 특징.


"겐지백인일수(源氏百人一首; 겐지 햐쿠닌잇슈)"

1839년(덴포(天保) 10년) 출간. 구로사와 오키나마로(黒沢翁満) 편찬.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 등장하는 인물의 와카를 채록하였으나, 시인의 수가 123명이다. 초상화를 넣었고, 인물의 간략한 전기와 간략한 주석을 실었다. 와카는 마쓰켄 요시야스?(松軒由靖)가 썼고, 그림은 콘사이 요시야스?(棔斉清福)가 그렸다.


"영웅백인일수(英雄百人一首; 에유 햐쿠닌잇슈)"

1844년(덴포 15년) 출간. 미즈타니 료쿠테(水谷緑亭) 편찬. 신대부터 무로마치 시대까지의 무인들이 쓴 와카를 채록하였다.


"열녀백인일수(烈女百人一首; 레쓰조 햐쿠닌잇슈)"

1847년(고카(弘化) 4년) 출간. 미즈타니 료쿠테(水谷緑亭) 편찬. 저명한 여성의 와카를 채록하였다.


"속영웅백인일수(続英雄百人一首; 조쿠 에유 햐쿠닌잇슈)"

1849년(가에이(嘉永) 2년) 출간. 미즈타니 료쿠테(水谷緑亭) 편찬. 헤이안 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 1573~1603)까지의 무장·다이묘의 와카를 채록하였다.


"의열백인일수(義烈百人一首; 기레쓰 햐쿠닌잇슈)"

1850년(가에이 3년) 출간. 미즈타니 료쿠테(水谷緑亭) 편찬. 헤이안 시대부터 에도 초기까지의 무장과 그 부인 등이 쓴 와카를 채록하였다.


"여백인일수(女百人一首; 온나 햐쿠닌잇슈)"

1851년(가에이 4년) 출간. 헤이안 시대와 가마쿠라 시대의 여류 시인이 쓴 와카를 채록하였다.


"의열회천백수(義烈回天百首; 기레쓰 가이텐 햐쿠슈)"

1874년(메이지 7년) 출간. 소메자키 노부후사(染崎延房) 편찬. 막부 말기 지사 등의 와카를 채록하였다.


"애국백인일수(愛国百人一首; 아이코쿠 햐쿠닌잇슈)"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쇼와 17년)에 선정·발표되었다. 사랑과 관련된 시가 많은 오구라 백인일수를 대신하여 '애국 정신이 표현된' 와카를 채록하였다.


"헤이세이신선백인일수(平成新選百人一首; 헤이세이 신센 햐쿠닌잇슈)"

2002년(헤이세이 14년) 출간. 오구라 백인일수·애국백인일수와 중복되지 않도록 와카를 채록하였다. 메이세이샤(明成社)에서 구 가나(旧かな)를 사용하여 출간되었고, 분게슌슈샤(文藝春秋社; 문예춘추사)에서 신 가나(新かな)를 사용사여 출간되었다.


"금석수가백찬(今昔秀歌百撰; 곤자쿠 슈카 햐쿠센)"

2012년(헤이세이 24년) 출간. 오구라 백인일수·애국백인일수·헤이세이신선백인일수와 중복되지 않도록 와카를 선정하였다. 선정자 1명이 시인 1명씩을 선정하여 총101수를 채록하였다. 처음에는 기증만 하였고 판매되지는 않았다.




참고사항

이 글에서 일본어 고유명사의 한글 표기는 가능한 한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에 맞추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카루타(가루타) 한 단어는 카루타를 원칙으로 하여 적었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상으로는 가루타가 맞습니다 ("외래어 표기 규범 영향 평가", 문화체육관광부, 2010, 162 (pdf에서는 177쪽)). 하지만 국내 포털 검색 결과는 가루타보다 카루타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구글에서도 큰따옴표를 붙여 검색하면 가루타보다 카루타가 많이 나왔습니다. 글을 적는 사람 입장에서는 검색이 안 되어 읽히지 않으면 아쉽기 때문에, 두 단어를 병기하였습니다.


그리고 つ는 '쓰'로 표기하는 것이 외래어 표기법에 맞으므로 그렇게 적었습니다. 실제 발음은 츠, 쯔, 쓰가 섞인 것 같은 발음입니다. 하지만 실제 인터넷상에서는 '츠'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 이것도 고민했습니다. 우쓰노미야 렌쇼와 오쓰시 두 단어만 쓰와 츠를 병기하였습니다.


그 외에는, えい·へい가 에·헤로 표기되지 않고 에이·헤이로 표기되는 등의 사례가 있어서 약간 어려웠습니다.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된 고유명사의 예시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앞의 몇 개만 적었습니다.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かまくらじだい)

우쓰노미야 렌쇼(宇都宮蓮生, うつのみや れんしょう)

덴지 천황(天智天皇, てんじてんのう)

준토쿠 천황(順徳天皇, じゅんとくてんのう)

산장(山荘, さんそう)

고토바 천황(後鳥羽天皇, ごとばてんのう) 

미나모토노 구니자네(源国信, みなもと の くにざね)

미나모토노 도리요시(源俊頼, みなもと の としより) 

기이 시게후사(城井鎮房, きい しげふさ)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とよとみ ひでよ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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